[독립운동가 이승만 학술 대토론회] 이종찬 광복회장 환영사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2.02

< 환 영 사 >

 

정부는 올해 ‘1월의 독립운동가’로 이승만대통령을 선정하였습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는 사업은 1992년부터 시작해 왔습니다.

 벌써 32년이나 되었고, 선정된 영웅도 501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대통령이요, 대한민국정부수립된 이후 초대대통령이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이제야 이달의 독립운동 영웅으로 뒤늦게 선정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역사적인 인식이 잘못되었고, 

그 분에 대한 가치판단이 이념에 찌든 편협한 정치사에 오염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저는 10살에 민족해방이란 감격을 중국 상해에서 맞이했습니다. 

그 때 처음 이승만 박사라는 위인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2차 대전 종전과 해방을 맞이한 중국 국민들은 일제히 “장(개석) 총통 만세”를 외쳤습니다.

저는 저의 가친께 “중국은 장 총통이 있는데 우리는 왜 총통이 없습니까?”

 

아버님은 왜놈의 압제시절 지하에 숨어 다니시면서 한 번도 독립운동 영웅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신 가친께서 “우리도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란 분인데 이분은 대학에서 공부를 잘하셔서 박사가 되었다.

그분의 스승이 미국대통령이 되어 모든 어른들이 그분을 대통령으로 모시면 우리나라 독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분을 모셨다.

 

지금 그분은 미국에 계시는 데 이제 곧 귀국할 것이다.”

 가친의 말씀에는 임시정부의 역사와 너도 공부 잘하면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그런 교육적인 암시도 포함된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

초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절 독립운동 방안을 놓고 서로 다투었습니다. 

외교노선, 무장투쟁노선, 민족개량주의 노선, 후엔 사회주의 노선…

 이승만대통령은 일관되게 외교노선을 주장하셨습니다. 

자연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임시정부가 해체될 위기도 맞았습니다.

 

오늘날 다시 회고해 보면 각 노선의 우열을 가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일제의 압제 하에 있었고,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제한된 인력과 

자산으로 노선의 선택은 갈등을 빚게 된 것, 불가피한 것입니다. 

당시 절박했던 현실을 이해하고 우리는 지도자를 평가해야 합니다.

 

여러분 !

그런 뜻에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너무 인색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욱이 해방이후 이념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지도자의 길을 재단하는 것은 올바른 평가라 볼 수 없습니다.

독립운동을 말할 때, 현재의 가치로 100년 전 일을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온당한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이후 많은 업적도 이룩했지만 집권기간 벌어진 어두운 단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암울했던 면이 있다 해서 그분의 독립운동사까지 먹칠한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업적을 소개하고 

그분을 이달의 독립운동 영웅으로 모시게 된 뜻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학술회에 참여하신 여러 선생님들의 노고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106년(2024) 1월 30일

광복회장 이 종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