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년은 1919년 재차 강조 -이종찬 광복회장, 백범 74주기 추모식 추모사서 독립운동 왜곡 폄하 세력에 질타 -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3.06.27

대한민국 원년은 1919년 재차 강조
-이종찬 광복회장, 백범 74주기 추모식 추모사서독립운동 왜곡 폄하 세력에 질타 -

□ 이종찬 광복회장은 오늘(26일) 오전 11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74주기 백범 김구선생 추모식에 참석, 백범선생의 영전에 추모사를 헌정했다. 

□ 이 회장은 추모사에서 “오늘은 우리 민족의 참 스승이셨던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서거하신 매우 애통한 날”이라면서 백범선생이 돌아가신 74년 전 그날을 상세히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날 우리는 민족의 크나큰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 한 분만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민족사적 정통성을 확고히 세우는 정부로, 분단을 뛰어넘는 완전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겠다는 온 겨레의 꿈이 한순간에 멈췄다”고 회고했다.
 
□ 이 회장은 “많은 이들이 백범 선생께서 주장한 분단 없는 평화통일을 곡해하고 아전인수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선생께서는 무조건 통일만 바라는 통일지상주의 길을 가신 것이 아니었다. 선생께서 진정 바라는 것은 남북의 한민족이 사상으로 갈라져서 서로 총을 쏘고, 죽고 죽이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 이 회장은 “선생께서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불평등과 소외가 없는 균등사회를 강조하셨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또한) 백범께서는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문화주의를 바라고 계셨다는 사실도 국민이 알아야 한다”면서 “이 때문에 저는 현행 대한민국헌법 전문에 ‘대한국민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분명하게, 또 주저 없이 넣어서 명시하였다.”고 말했다.

□ 이 회장은 “선생께서 그토록 지키려 애쓰셨던 임시정부의 역사를 정리하여 국민에게 알리고자 작년에 제가 위원장으로 기념관을 건립하였다”면서 “임시정부기념관에, 오늘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1919년 기미년 독립선언, 대한민국임시정부 헌장, 우리의 제헌헌법 전문(前文), 이 세 가지 선언을 관통하는 정신임을 분명히 새겨 넣었다. 그러므로 다시 강조한다. 대한민국의 원년은 1919년이다. 이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세력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북한을 옹호하는) 극좌파 친북 이적 집단, 아니면, 한국의 독립운동을 고의로 폄하하고 왜곡하는 소위 극우세력인 것”이라 규정했다. 

□ 그는 이어 “앞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을 중심으로 올바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미처 밝히지 못한 역사를 국민에게 소개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마침 (우리) 정부는 보훈처를 보훈부로 격상을 하였다 ”라고 말했다. 

□ 이 회장은 끝으로 “선생님께서 진정으로 민족을 사랑하고, 자주독립의 역사를 지향하셨다는 뜻을 우리 후진들에게 교육할 것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분명하게 확립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끝).


제74주기 백범김구 선생 추모식 광복회장 추모사 (전문)
 
여러분!
오늘은 우리 민족의 참 스승이셨던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서거하신 매우 애통한 날입니다. 

 74년 전, ‘바로 오늘’, 당시 공덕동에 사는 소년 이종찬은
선생께서 흉탄에 쓰러지셨다는 비보를 듣고 단숨에 서대문 근방 경교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군중들 틈에 추모하고 허탈해서 경교장 정문 앞 인도에 앉아서 추모객들을 일일이 보고 있었습니다.
뚱뚱한 장군 한 사람이 정문에서 나오자 군중들이 쑤군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 선생을 돌아가시게 한 것이 저놈들의 짓이야.”
그 순간 어디서 대기했던지 헌병이 쫙 깔렸습니다.
소년 이종찬은 그 광경을 일생 잊지 못합니다.

 우리는 민족의 크나큰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 한 분만을 잃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반도에서 민족사적 정통성을 확고히 세우는 정부로, 분단을 뛰어넘는 완전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겠다는 
온 겨레의 꿈이 한순간 멈추는 듯 했습니다. 

 그날을 생각하며 절통한 마음으로 선생님께 예를 갖추어, 추모사를 올립니다.

 겨레의 스승이신 선생님!
선생께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 계시면서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수십 번 생사의 문턱을 넘나드시었습니다. 

 왜적은 선생님을 검거하기 위해 높은 현상금을 걸기도 했습니다.

세칭 ‘남목청 사건’에서 독립운동 전선에 침투한 밀정의 총탄을 맞고도 선생은 일어나셨고,
평생 총탄을 몸에 지니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광복된 고국 땅에 환국하셨는데
친일 잔당들의 흉모의 총탄에 힘없이 쓰러지시다니, 실로 통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서거는 우리 민족사의 비극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역사가 반드시 정의의 편에만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라는 오도된 역사관을 우리에게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긴 역사로 볼 때, 선생님은 우리 겨레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이는 분명 정의가 이긴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백범 선생님!
선생께서 38선에 드러눕더라도 분단을 막으려 하셨던 
선생님의 올곧은 신념은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력으로 한반도 통일을 기도하는 호전주의 북한은
여전히 대량살상 무기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남쪽 여러 민중단체에 공작원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선생께서 우려하시던 동족상잔의 위험은 아직도 이 땅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선생께서 주장하신 분단 없는 평화통일을 곡해하고 아전인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 주장합니다. 
선생께서는 자유와 인권이 유린되더라도 무조건 통일만 바라는 통일지상주의 길을 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생께서 진정 바라는 것은 남북의 한민족이 사상으로 갈라져서 서로 총을 쏘고, 
죽고 죽이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의 주장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선생께서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불평등과 소외가 없는 균등사회를 강조하셨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선생께서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문화주의를 바라고 계셨다는 사실도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저는 현행 대한민국헌법 전문에 “대한국민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분명하게, 또 주저 없이 넣어서 명시하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토록 지키려 애쓰셨던 임시정부의 역사를 정리하여 국민에게 알리고자 
작년에 제가 위원장으로 기념관을 건립하였습니다. 

 저는 임시정부기념관에, 
오늘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1919년 
기미년 독립선언, 대한민국임시정부 헌장, 우리의 제헌헌법 전문(前文), 이 세 가지 선언을 관통하는 정신임을 
분명히 새겨 넣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강조합니다. 
대한민국의 원년은 1919년입니다.
이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세력은 극좌파 친북 이적 집단,
아니면, 한국의 독립운동을 고의로 폄하하고 왜곡하는 
소위 극우세력인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기념관을 중심으로 
올바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미처 밝히지 못한 역사를 
국민에게 소개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마침 정부는 보훈처를 보훈부로 격상을 하였습니다. 

 또한 저는 이번에 광복회원들의 총의로 회장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장손인 김진 군은 부회장으로 동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광복회는 선생님의 사상과 활동을 왜곡 없이
역사에 기록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선생님께서는 진정으로 민족을 사랑하고,  자주독립의 역사를 지향하셨다는 뜻을 
우리 후진들에게 교육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분명하게 확립할 것입니다. 
 
백범 선생님!
오늘 저는 우리가 현재 진행하고자 하는 광복회 사업의 
일단을 고유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부디 저희들의 노력을 지켜봐 주시고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대한민국 105년 6월 26일
광복회장 이 종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