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4월 독립운동가

04월의 독립운동가

오광선/정현숙(1896.05.13~1967.05 /1900.03.13~1992.08.03.)

훈격 :건국훈장 독립장/건국훈장 애족장서훈년도 :1962/1995

1920년 대한독립군단 중대장으로 독립군 지휘

1931년 한국독립군 의용군 중대장

1934년 낙양군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 간부 양성

1919년 남편 오광선과 함께 만주로 망명

1919-1935년 독립군 지원

1941년~1944년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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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대한독립군단 중대장으로 독립군 지휘

1931년 한국독립군 의용군 중대장

1934년 낙양군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 간부 양성

 

1919년 남편 오광선과 함께 만주로 망명

1919-1935년 독립군 지원 / 1941년~1944년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 활동

오광선 선생은 1896년 경기도 용인 원삼면 죽능리에서 태어났다.
 1913년  삼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웃 마을 출신 정현숙(이명 정정산) 여사와 결혼했다.
 독립운동에 큰 뜻을 품은 선생은 1914년 서울로 올라가 종로에 있는 상동(尙洞)청년학원에 입학하였으나
 총독부의 지속적인 탄압과 재정난으로 1915년 문을 닫게 되자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선생은 보정(保定)군관학교에서 6개월 수학 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여 1918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후 동흥(東興)학교 군사교관과 체육교사로 재직하였다.
1920년 12월 대한독립군단 중대장에 임명되었으며, 1930년 7월 이청천과 홍진 등이
중국 위하현에 결성한 한국독립당의 의용군 중대장으로 활동하였고 1934년 2월에는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교관으로 군관 양성활동에 매진하였다.
1936년 경  북경으로 파견되어 첩보활동을 벌이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5년 11월 귀국하여 ‘대한국군준비위원회’, ‘광복청년회’, ‘대동청년단’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12월 육사 8기로 입교하여 이듬해 육군대령으로 임관하였고 전주지구위수사령관을 지낸 후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정현숙 여사는 1919년 남편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여 화전을 일구며 생활하는 어려움속에서도 독립군의 뒷바라지에 헌신하여 ‘만주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1941년 한국혁명여성동맹이 결성되자, 그 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 당원에 가입하여 임정 활동에 참여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오희영과 희옥 자매 역시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담하여 선전활동에 참여한 것은 물론, 광복군에 입대해 초모공작 등에 활약하였다.
정부에서는 두 분의 공훈을 기리어 오광선 선생에게는 1962년 독립장을 수여하였고, 정현숙(이명 정정산) 여사에게는 1995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